<편집자주>
으레 그러하듯, 의료로봇 분야 역시 여타의 로봇 분야처럼 폭 넓다. 그래서 난해하다. 특히 전문서비스 영역의 로봇들은 더욱 그렇다. 제조용 로봇처럼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표준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해하고, 폭 넓다. 또한 그래서 더욱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의료용 로봇분야를 수술로봇과 비수술로봇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본 챕터에서는 대표적인 수술로봇에 대해 짚어보고, 한국의 수술로봇 현황을 전달한다.
지난 2005년, 국내 최초의 다빈치 로봇이 연세세브란스병원(이하 세브란스병원)에 설치됐고, 이춘택병원에서는 로봇인공관절연구소가 설립되어 로보닥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이 두 로봇은 1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수술로봇 분야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이름으로 꼽히고 있다. 아니, 이제는 시장 및 로봇수술기법 등이 어느 정도 농익어 바야흐로 의료업계와 로봇업계 모두가 주목하는 소위 ‘메인’이 됐다.
첨단 의료수술의 정점에 선 ‘다빈치’
의료 분야에서 가장 오랫동안 연구된 로봇은 수술로봇이다. 그중에서도 다빈치는 최소침습을 위한 수술 분야에 있어 상당한 아성을 쌓고 있다.
한국에는 지난 2005년 7월에 세브란스병원에서 최초의 다빈치 수술로봇을 시도했고, 동 병원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로봇수술라이브 심포지엄’을 개최하며 이제 국내 다빈치 로봇수술을 논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이름이 됐다.
다빈치 시스템의 원형은 1980년대 말 미 육군과의 계약 하에 前스탠포드 연구소에서 개발됐다. 초기 작업은 전쟁터에서 원격으로 수술을 진행하기 위한 시스템 개발을 목적으로 자금 지원이 이뤄졌으나, 이후 상업적 적용 가능성이 더욱 주목을 받았다.
다빈치 로봇 시스템을 상용화하고 있는 인튜이티브서지컬은 이러한 가능성을 시험해보고자 1995년에 설립됐고, 이후 1999년 1월 다빈치 로봇 시스템을 출시, 2000년에 로봇수술 시스템으로서는 최초로 일반 복강경 수술용으로 FDA 승인을 받게 된다.
처음 로봇 수술기기는 심장 질환 수술을 위한 목적으로 개발됐다. 심장 수술을 위해서는 가슴부위를 크게 절개하고, 뼈의 중앙을 갈라 수술을 해야 했기 떄문에 수술 후 합병증과 부작용이 심해 이를 최소한의 절개로 복잡한 뼈의 구조를 뚫고 들어가 섬세하게 수술할 수 있는 기구가 요구됐다.
그러나 로봇수술기의 장점이 최초로 드러난 분야는 심장이 아닌 비뇨기과였다. 얇은 로봇 팔과 움직임이 자유로운 손목기구가 골반 깊숙하게 위치한 전립선 수술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판단한 독일의 한 의사가 최초로 로봇 전립선 암 수술을 시행한 것이다. 이 수술의 결과는 큰 성공을 거뒀고, 이후 로봇 전립선 암 수술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현재 인튜이티브서지컬의 로봇 다빈치는 전 세계에 3,000여 대가 넘게 팔렸으며, 그 중 2,000여 대는 미국에서, 500여 대는 유럽에서, 그리고 나머지 500여 대는 아시아 및 남미 등의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
로보닥, 한국과 인연을 맺다
복강경 분야의 다빈치 로봇 시스템이 있다면 인공관절치환 분야에는 로보닥이 있다.
로보닥은 1980년대 중반, 미국 수의사인 Howard Paul 박사와 정형외과 의사인 William Bargar 박사가 공동으로 창안하고, 이후 1986년 IBM과 美 U.C Davis 대학이 공동으로 로봇 개발을 진행했다.
1989년 동물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 성공했고, 1990년에는 본격적인 R&D 진행을 위해 IBM이 초기자본을 제공한 ISS(Integrated Surgical Systems)가 설립되어 상용화에 착수, 1992년 세계 최초로 로보닥이 대퇴골에 구멍을 뚫고 무시멘트(Cementless) 방식으로 임플란트를 삽입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5년 간 세계적으로 850여 명의 환자를 수술하며 호평을 받았지만 두 차례나 FDA 승인을 받는 데 실패하며, 세 번째 FDA 승인 도전에 소요되는 추가개발비와 임상시험 비용 등의 문제로 2006년 큐렉소가 인수해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어 한국야쿠르트에 인수된 큐렉소는, 현재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으며 매니퓰레이터의 국산화 등 해외 기술에 의존하고 있는 로보닥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외과수술로봇, 한국시장에서는 과연?
이미 로보닥과 다빈치 등 세계적으로 검증된 수술로봇은 대부분 미국 또는 유럽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우리나라 역시 2010년에 수술로봇을 개발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2005년 다빈치가 처음 도입됐을 당시 병원에서는 이를 잘 활용하지 못했지만, 2010년부터 다빈치가 세브란스병원의 본격적인 수익모델로 자리 잡으며 수술로봇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 무렵 현대중공업과 큐렉소, NT메디 등의 기업들이 포함되어 로보닥 국산화를 위한 과제도 진행됐다. 정부 역시 의료로봇에 대한 관심을 직접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의료분야의 공학 연구를 논할 때 CARS(Computer Assisted Radiology and Surgery)를 빼놓을 수 없다. 국내의 한 의료로봇 개발자는 “세계적으로 외과의들의 화두는 암을 정복하는 것인데, 이를 위한 방법에는 방사선, 항암제 활용, 수술이 있다. 이중 방사선과 수술은 진행 과정이 동일하다. 환부의 의료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바탕으로 처방계획을 수립한다. 다만 방사선은 비접촉이고, 수술은 접촉이라는 차이가 있다.”며 “직접 시술에 들어갔을 때 이를 보조해주는 여러 가지 장치들의 로봇화 연구가 진행됐다. 결국 의료로봇 중 가장 오래된 분야는 CARS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국 역시 이 CARS에 지속적으로 투자했고, 로봇과 관련해서는 로보닥 프로젝트가 가장 규모가 큰 프로젝트였다. 결과적으로, ‘현재까지’ 한국의 의료로봇 프로젝트는 ‘완전하게 성공하지는 못했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로보닥 매니퓰레이터의 국산화 등의 성과는 있었지만, 아직도 로보닥의 완전한 국산화를 위해서는 더욱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왜 한국의 수술로봇 프로젝트는 성공하지 못했나
제조용 로봇의 경우 주요 툴이 되는 로봇암은 대기업이 만들고, 이를 사용해 어플리케이션을 꾸리는 일을 로봇SI기업들이 담당하는 분업체제가 구축되고 있다.
하지만 의료로봇은 상황이 다르다. 의료를 알아야 되고, 로봇을 알아야 되며, 굉장히 복잡한 이 단일의 시스템을 한 기업이 끝까지 책임지고 유통을 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여력을 가진 기업이 현재까지는 없다. 미국과 유럽을 제외하고는 로봇강국이라는 일본도, 중국도 마찬가지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수술로봇 개발에 한 기업당 몇 년에 걸쳐 20~30억 원가량을 지원하는데 그쳤다면, 일본은 총 사업비 50억 엔 규모의 ‘미래 의료를 실현하는 첨단 의료기기 시스템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현재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단일기업의 역량이 미치지 못한다면 중요한 것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인데, 우리정부는 이미 한 번의 실패를 겪으며 트라우마가 생겼다. 항간에서는 수술로봇개발에 다시 지원이 시작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메디컬 기업도 많고, 로봇기업도 많은데 한국형 수술로봇개발은 난항을 겪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의료로봇은 로봇기업이 유리하기 때문에 먼저 깃발을 꽂아야 하는데 모두가 눈치만 보는 중”이라며 “다빈치의 주요 특허가 풀린다는 소식에 국내 대기업 S사도 열심히 수술로봇을 개발하다가 결국 의료로봇팀을 해체했다”고 전했다.
한국의 수술로봇기업들이 바라보는 시장
국내 로봇기업들도 물론 수술로봇개발을 등한시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떠한 로봇들을 개발하고 있을까.
우선 한국의료계의 특이성을 먼저 집어보고 넘어가자. 긴급한 벨소리 한 번에 밥을 먹다가도 수술실로 뛰어가고, 몇 시간에 걸쳐 고된 수술을 진행하는 외과의사들. 의료드라마를 보면 종종 보는 장면들이다. 외과는 상당한 숙련도와 난이도를 필요로 하며 육체적으로도 고단한 분야인데,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인기 있는 분야 중 하나이다. 미국의 경우 외과의의 수입이 타 과보다 2배가량 높다.
반면 한국에서 외과를 비롯한 내과, 산부인과는 고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공산화된 의료정책으로 인해 타 과와 수입의 차이가 별로 없다. 이런 부분이 심각하다는 인식으로 인해 정부에서 차이를 만든 게 불과 2년 전, 약간의 수가를 더 주는 정도이다.
쉽게 말해, 외과 분야는 크게 인기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다빈치나 로보닥처럼 세계에서 많은 임상결과를 내고 있는 선진 로봇들이 들어오고 있다. 한마디로, 국가의 지원도 변변치 않은고 써전을 선호하는 풍토도 조성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기술격차 및 임상결과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앞선 해외 외과수술로봇이 국내에 유입된 것이다.
그래서 최근 수술로봇 개발은 한국사회가 선호하는 과들,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혹은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을 주목하고 있다. 피부과에서는 이미 레이저 시술에 로봇암을 사용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모발이식로봇 아타스가 이슈가 됐으며, 안구각막이식로봇 등이 개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즉, 국내 로봇기업들은 이처럼 소위 ‘인기 있는 과’에 어떻게 로봇을 집어넣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현 단계에서 우리 로봇기업들이 당장 다빈치 같은 로봇을 개발할 수는 없다. 개발이 된다손 치더라도 충분한 임상결과를 확보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어쩔 수 없다.
반면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뛰어난 의료기술력을 자랑하는 분야들이 많다. 미용, 성형과 같이 수요가 많고, 의사들도 선호하는 과들에도 로봇이 들어갈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이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에 로봇메이커들은 다빈치 로봇 시스템이 주는 상징성을 넘어 외과 외의 수술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는 로봇 어플리케이션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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